“... 그때 저는 겨우 열여섯살. 모든 것이 조금씩 부족한 듯했어요. 예를 들어 가슴의 과일 두 개,
그것은 딱딱하게 모습을 갖추어가며 영글었지만, 육체 안쪽에서 스며나오는 광채가 모자라서 아직은 분명히 그 무르익은 과일이 지닌 화려한 윤기를
갖고 있지 못했거든요. 아랫배도 좀 납작했고요. 다리는 쭉 뻗어 탄력이 있었지만 허벅지에서 허리로 이어지는 부분에는 성숙한 여신의 묵직한
엘레강스가 없었습니다. 파파의 말을 빌자면, 난 어린 식물...” (p.32)
몇몇 표현에서 나는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떠올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책에서 발화자는 상대인 남성이 아니라 소녀 자체이다.
소녀가 소녀의 음성으로 상대방의 눈에 비친 자기 자신을 대상화 하고 있어서 더욱 도발적이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발화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소녀의 음성은 소녀가 남긴 메모 노트의 위에서 기능할 뿐이다. 실제로 소설은 이 메모 노트를 넘겨 받은 K에 의해 작성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K가 미키를 잘 알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미키와의 첫만남 이후 몇 해가 흘렀지만 그 사이 K가 미키와 만난
것은 몇 차례 되지 않는다. 그러던 중 K는 미키의 교통사고 소식을 뉴스를 통해 들었고, 그 후 미키의 병실을 방문하였고, 그제야 실재하는
미키의 곁에 머물 수 있었을 뿐이다. 노트는 미키가 퇴원을 하고 난 다음에야 K에게 전달된 것이다. 일시적인 기억상실증을 겪는 미키는 K를
통하여 노트에 실려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고, 그것을 홀로 감당할 수 없어서 K에게 보냈다.
“... 수많은 동물이 행하고 있듯이 근친끼리 성적으로 결합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이것은 단순한 인력 법칙과 비슷하다.
그런데 자신과 동떨어진 존재와 결합하려면, 그리고 이 거리를 극복하려면 자연적인 인력과는 별개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게 된다. 이 반자연적인
에너지를 담당하게 되는 것은 가장 인간적인 무엇, 요컨대 ‘언어’일 것이다. 언어에 의해 비행飛行하는 이 정신적인 에너지를 가리켜 일단
‘사랑’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사랑이란 결국 상상력의 한 형태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근친상간은 보통 인간들에게는 금지되어 있는 거지.
이를 행할 자격이 있는 것은 자신의 오빠나 누이동생을 사랑할 수 있을 만한 여자, 혹은 남자에게 한정되는 거죠. 이런 정신적인 왕족은
자기들끼리만 사랑하고, 신에게 대항하여 자기들 또한 신의 일족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허용되는 거야. 그 외의 근친상간은, ‘에스키모’가 버스
안에서 말했듯이 숯 굽는 오두막이나 가난뱅이들이 벌이는 비천한 사건에 불과해. 나와 L의 경우도 그랬지.” (pp.134~135)
1965년에 발표된 소설은 여러모로 독서가 쉽지는 않다. 소설의 주요 내용은 소설 속의 소설과 같은 형태로, 미키의 메모
노트에서 인용된 것이다. 그리고 소설 전체는 그러한 메모 노트를 읽고 혼란을 느낀 K가 작성한 것으로 되어 있다. 시간의 진행 또한 순차적이지
않아서 불친절하다. 과거와 현재는 메모 노트의 안과 밖을 넘나든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욱 독자를 힘겹게 만드는 것은 소설의 소재이다.
메모 노트의 작성자인 미키와 파파, 그리고 메모 노트를 읽는 K와 K의 누이인 L 사이의 근친상간 혹은 근친성애, 소설은 이
동물적이기 그지없는, 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소재를 양분으로 삼고 있다. 그렇지만 더욱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은 이러한 소재가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는 그 식물적 양태이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프레임 안에서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독자인 우리는) 이 동물적인 소재의 식물적인
양육을 보면서 마음의 보챔으로 심하게 흔들리고 만다.
“... 나는 이미 조심성도, 탐색이 정열도 잊은 채 그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런 위험도 없었다. 나는 동물적으로 거칠게 소란을
떨지 않았고, 그녀 안에 접목된 또 하나의 식물로서 고요히 나와 그녀 사이에 흘러넘치며 서로에게 침투해갈 때를 느끼고 있었다. 해마다 하나씩
나이테를 늘려가는, 그 속도로 나는 그녀를 밀어젖혔고 동시에 또한 같은 리듬으로 파상波狀적인 조임을 받았다. 그것은 거의 동물의 감각을 넘어선
리듬, 식물적인, 너무나 긴 주기의 리듬이었다. 아마 그녀 자신, 알아차리지도 못했으리라...” (pp.155~156)
어쩌면 작가도 이런 부분을 의식한 것인지 나름의 보루를 두고 있기는 하다. 미키와 파파가 그리고 K와 L이 실제로는 혈육이 아닐
수도 있다는 암시가 이파리 사이로 언뜻 비친다. 하지만 우리들은 알고 있다. 그런 식으로 태양 빛을 투과시킬 때 이파리는 그저 거멓게 보일
뿐이다. 그것이 환한 빛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게 소설은 유미적인 문장들로 가득하지만 밝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읽으며 끊임없는 질문,
마치 자기 내부의 또 다른 자아가 던지는 것처럼 쉽사리 모른 체 할 수 없는 이 질문들의 충돌로 수군거림 안에서 헤맬 수밖에 없다.
미키는 어떻게 파파를 사랑하게 되었는가, 파파는 어떤 방식으로 미키를 받아들이는가, 미키와 K의 관계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K와 L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K와 L은 이제 다시 만나게 될 것인가, 미키와 K는 자신들의 선택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도대체 미키와 K에게 일어났던 일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미키가 택한 메모라는 방식과 K가 택한 소설이라는 방식은 우리를 향하여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고스란히 소설이 되고 있다.
“... 아마추어의 경우, 자신의 삶에 의미를 주고 싶다고 하는 충동에서 수기 같은 것을 쓰고, 그것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변질되어 소설이 되는 것이겠지요. 다시 말해 그들에게 소설은 분명히 인식의 한 수단입니다. 그런데, 저의 경우는 그와는 달랐습니다. 그
소설(혹은 그냥, 그 노트)은 저에게는 주술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듯싶습니다. 제가 분비한 낱말은, 현실을 녹여,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아롱거리는 아지랑이 속에 저를 가두기 위한 주문이라고 하는 성격을 띠고 있었습니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저는 그 소설에 의해 ‘불가능한
연인’이었던 파파에 대한 나의 ‘불가능한 사랑’을 성화하려 했던 것이었습니다. 저의 어깨에서, 독사 같은 사랑으로 가득 찬 또 하나의 머리가
돋아나게 하려는 것이었지요. 가짜 연인 파파를 사랑하기 위해서.” (pp.221~222)
그렇게 메모 노트가 현실에 영향을 미치고 현실이 다시 메모 노트를 간섭하면서 발생시키는, 현실과 메모 노트의 내용 사이의 충돌은
고스란히 소설이 되고 있다. 해답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소설, 메시지가 아니라 백지를 제공하는 소설은 위력적이다. 많은 이들이 그 위력을
알아보았고 나 또한 거기에 동참하고 말았다. 파렴치한 아름다움, 고혹적인 파멸이라는 이율배반에 잠시동안 시달리고 말았다.
“... 여신의 발바닥 주름을 응시하면서 그 사건의 전말을 들려주었다. 내 입은 나쁜 피 같은 수치와 암흑을 이야기하려 했건만
나오는 말들은 여름 햇볕을 만난 꿀처럼 투명해지고, 그것은 불행한 모험의 뜨거운 노래가 된다...” (pp.101~102)
쿠라하시 유미꼬 / 서은혜 역 / 성소녀 (聖少女) / 창비 /
260쪽 / 2014 (1965)
독보적인 전후 신세대 작가 쿠라하시 유미꼬
강렬한 개성과 유미적 문체로 빚어낸 몽환적인 상상력
일본 현대문학에서 ‘제3의 신인’ 이후 등장한 젊은 작가군 중에서도 강렬한 개성과 실험적인 작품세계로 독자적인 위치를 점했던 쿠라하시 유미꼬 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장편소설 성소녀 가 국내 초역되었다.
메이지 대학 불문학과 재학 중인 1960년에 모교의 총장상 공모에 파르타이 가 입선하며 데뷔했는데 평론가 히라노 켄이 이례적으로 마이니찌신분 의 문예시평을 할애하여 ‘오오에 켄자부로오를 발견했을 때의 흥분’을 느꼈다는 호평을 실으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줄곧 오오에 켄자부로오를 비롯한 동시대 작가들과 한 그룹으로 거론되면서도, 구체적인 질서와 시공간에서 벗어난 세계, 섬세한 감성과 묘사가 강화하는 몽환적인 비현실성, 일본 사소설 전통에 대한 거부반응 등, 일본 문단에 예외적이고 논쟁적인 작품들을 선보이며 독특한 작가로 평가받아왔다. 성소녀 는 독보적인 신인 작가로서의 문학적 재능이 번득이던 초기의 작품으로, 자극적인 주제를 인상적인 필치로 매끄럽게 다뤄내고 있다.
성소녀
작품해설 / 일본 ‘안보’ 세대의 ‘반’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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