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돈이나 어떤 특권 때문에 글을 쓰는 게 아닙니다. 다만 사랑 때문에, 어떤 세계에 대한 이상한 미련 때문에 글을 쓰는 거죠. 사람들이 치밀하게 생각하고 거의 사라진 문화의 언어로 말을 하는 그런 세계 말입니다. 나는 그런 세계가 좋습니다. (p. 194)나는 레이먼드 챈들러가 좋다.『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를 읽으면서 그런 감정이 생겼다. 이 책을 엮고 옮긴 안현주는 레이먼드 챈들러를 기리며 이렇게 표현한다. 이야기라는 방패를 집어던진 있는 그대로의 챈들러는 신랄하지만 정의롭고, 까다롭지만 합리적이며, 지적이지만 낭만적인 사람이고, 그런 챈들러는, 자신이 창조한 탐정 필립 말로보다 더 매력적이라 단언하겠다. 설사 챈들러의 이름을 처음 들어 본 사람일지라도 그 매력을 느끼기에 아무 문제가 없으리라.(p. 11)장담하는데, 정말 아무 문제가 없다.이 책에서는 챈들러의 편지들을 발췌, 편집하여 주제별로 정리하고, 각 편지마다 제목을 붙여 놓았다. 편지의 특성상 일정한 주제로 전개되지도 않고 제목이 있을 리도 없지만 굳이 그렇게 정리한 이유는 우선, 개괄적인 내용을 목차에 드러내어 독자의 흥미를 끌기 위함이다. 챈들러도 말했지만 “읽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는 책은 아무 소용이 없는” 법이니까. 두 번째 이유는 독서의 편의를 위해서이고, 마지막으로는 나중에 해당 편지의 내용을 쉽게 떠올릴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따라서 순서와 관계없이, 어느 부분을 펼쳐서 어디부터 읽어 나간들 크게 상관은 없다. 조각을 맞춰 나가듯 흥미로운 제목부터 골라 조금씩 읽어 나가다 보면 어느새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큰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p. 12~ 13)시간순으로 정리해도 좋았을 것 같다. 워낙 부침이 있었던 인물이라 그런지 연대에 따라 감정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수많은 ‘수신자들’의 정보도 한꺼번에 제공했으면 읽기 수월했을 듯하다. 어떤 이는 정보조차 없어 답답했다.(사실 지금도 답답하다)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라는 제목이 이 책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에 대한 답은 하고 있다. 1931년에, 아내와 나는 크루즈를 타고 태평양 연안을 아주 느긋하게 돌아보고 있었지요. 밤이면 그저 좀 읽을거리를 찾아서 펄프 잡지를 집어 들곤 했어요. 그러다 갑자기 나도 이런 걸 써서, 공부를 하면서 동시에 돈을 벌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단편을 쓰는 데는 오 개월이 걸렸는데, 다른 작가들이 끝끝내 시도하기를 거부했던 방식을 썼죠. 어떤 이야기를 분석해 줄거리에 대해 아주 세세하게 시놉시스를 쓴 다음 그걸 소설로 옮겼습니다. 이를테면 가드너의 작품이라든가. 그는 내 좋은 친구이기도 하죠. 아무튼 그런 다음 전문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내가 어떤 부분에서 효과를 살리지 못했는지, 혹은 속도감을 맞추지 못했는지, 또 다른 실수는 없는지 비교해 봤어요. 그러고는 그 작업을 다시 반복하고 또 반복했죠. 하지만 당신한테 글을 쓰는 법을 알려 달라고 하는 친구들은 그런 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 그 친구들의 바람대로라면, 자기들이 쓰는 건 전부 출판되어야만 하니까요. 그 친구들은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고 얻으려고만 해요.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걸 몰라요. 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개념이 없지요. 과거에 이룬 성과가 무엇이든, 작가는 지금 현재 하려고 하는 일 앞에서 다시 아이가 됩니다. 아무리 상투적인 기교를 많이 익혔다 한들, 작가에게 지금 도움이 되는 것은 열정과 겸손함뿐입니다. (p. 77~ 78)1957년, 레이먼드 챈들러가 제임스 하워드에게 보낸 편지다. 어떻게 범죄소설을 쓰게 되었냐는 물음에 보낸 답장이라고 한다. 보통 필사를 했을 텐데, 그는 반대의 길을 걸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지게 된 게 아닐까. 대중적인 취향을 반영하지 않는 예술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회 구조 전반에 걸친 스타일과 특성을 감지하지 않고는 대중적 취향을 알 수가 없지요. 희한하게도 스타일에 대한 이런 감각은 교양과는 상관없고, 심지어는 인간성과도 거의 상관이 없는 듯해요. 야만적이거나 천박한 시대에도 스타일은 존재할 수 있어요. 하지만 북 오브 더 먼스 클럽, 허스트 프레스, 코카콜라 자판기 세대에는 존재할 수 없지요. 예술은 노력하고, 엄밀한 기준을 두고, 세부 내용을 비판하고, 플로베르의 방식으로 생산할 수는 없어요. 작품은 아주 자유롭게, 거의 무심한 태도로, 그리고 자의식 없이 생산되는 겁니다. 그저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p. 62~ 63)그러면 어떻게 해야 글을 쓸 수 있나요, 라고 묻고 싶지만, 아마 이렇게 답하지 않을까. 1947년, 로버트 호건에게 보낸 편지다. 누가 나한테 초보 작가에게 조언을 좀 해 달라고 부탁한다면, 나는 진심으로 일반적인 충고를 할 만큼 잘 알지 못한다고 대답해야 할 겁니다. 보통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작품이 어떻게 하면 잘 팔릴지 알려주는 데 집착하지요. 그런 문제에 대해서라면 아마도 당신이, 아니, 확실히 당신이 나보다 더 잘 알 겁니다. 어쨌든 나는 그런 면에서는 한 번도 남을 성공적으로 돕지 못했으니까요. 내가 스스로 투쟁한 끝에 얻었을지 모르는 지혜는 다만 장기적으로 유용할 뿐이죠. 내가 얻은 지혜란, 글쓰기 기술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빈약한 재능이나 재능이 전혀 없음을 드러내는 확실한 표시일 뿐이라는 믿음과 다소 상통하니까요. (p. 36~ 37)애써 정리하자면 기술에 집착하지 말고 글쓰기 본질에 들어가라는 조언이 아닐까 싶다. 이때 소재는 작가가 상상력을 풀어놓을 도약판에 지나지 않는다. 소설이 무엇인지는 쥐뿔만큼도 중요치 않다. 어느 시대 어느 때건 가장 좋은 소설은 언어로 마법을 부리는 소설이다.(p. 31) 이렇게 난해한 편지를 남기고 레이먼드 챈들러는 영화 쪽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다시 소설 쪽으로 와서 이런 편지를 쓴다. 어쨌거나 이번 이야기는 쓰고 싶었던 대로 썼습니다. 이제는 그렇게 쓸 수 있으니까요. 미스터리가 선명하게 드러나는가 하는 점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다만 사람들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상하고 부조리한 세계에 신경을 썼지요. 그리고 정직하려고 애쓰는 사람이 결국에는 어떻게 감상적으로, 내지는 더없는 바보로 보이게 되는가 하는 문제에도. 이 얘긴 이 정도로 하죠. 사실 그보다 더 현실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스타일이 모방되거나 심지어 표절되다 보면, 마치 내가, 나를 모방하는 이들을 모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 오거든요. 그러니 그들이 따라잡을 수 없는 곳으로 가야만 하는 겁니다. (p. 73)레이먼드 챈들러가 쓰고 싶었던 대로 썼다는 이번 이야기가 바로『기나긴 이별』이다. 그는 정말 따라잡을 수 없는 곳으로 간 듯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고교 시절 이 책을처음 읽고 “문체의 ‘비범함’에 그야말로 기겁하고 말았다”고 한다.(p. 251) 굳이 고백하자면 레이먼드 챈들러라는 이름은 들어 본 적은 있지만, 소설은 읽어 본 적이 없다. 어서 빨리 읽어야겠다.
챈들러가 보낸 편지 속에 담긴 챈들러 스타일!
장르소설가들의 ‘뜻밖에’ 반가운 에세이 시리즈인 ‘박람강기 프로젝트’ 3권. 하드보일드 소설가 레이먼드 챈들러가 작가, 편집자, 독자 들에게 쓴 편지 가운데 68편을 묶었다. 그동안 폴 오스터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등을 통해 일부분만 접할 수 있었던 챈들러의 통찰력 있는 견해들을 감상할 수 있다.
챈들러는 이 편지들을 통해 자신의 글쓰기 방식에 대하여, 글을 써서 먹고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에 대하여, ‘소설’과 ‘추리소설’의 관계에 대하여, 이 타락한 세계에서 모름지기 탐정이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노벨문학상의 가치에 대하여, 좋은 글쓰기의 필수적인 요소에 대하여 간결하게 서술한다.
여기에는 결혼과 연애에 관한 멋진 농담,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관록 있는 조언, 애거서 크리스티와 헤밍웨이와 로스 맥도널드와 존 딕슨 카가 쓴 작품을 향한 신랄한 비판, 투병중인 아내에게 헌정할 작품을 쓰지 못한 데 대한 회한,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적은 소회도 담겨 있다.
레이먼드 챈들러를 기리며
제1장 작품론
글 쓰는 힘을 잃지 않는 섬세함을 얻는다는 것/ 내가 욕을 먹는 이유/ 추리소설가의 분노/ 소설이라는 예술에 대하여/ 작가에게 가장 가치 있는 투자는 스타일/ 작가들의 도덕성/ 독자들에게 기억되는 것/ 표절 시비에 대하여/ 추리소설가와 멜로드라마/ 챈들러 스타일/ 촉매제로써의 탐정/ 대중적이지 않은 예술은 있을 수 없다/ 독자는 신경 쓰지 말라는 멍청한 말/ 프로 작가가 된다는 것/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 스타일이 모방되거나 심지어 표절되다 보면/ 추리소설은 돈벌이로 쓴다는 관점/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제2장 작가들
애거서 크리스티의 명예를 위하여/ 나는 제임스 케인이 싫어요/ 케인, 당신의 문제점은요/ 대실 해밋은 왜 절필했는가/ 얼 스탠리 가드너의 대단함/ 헤밍웨이가 쓴 작품은 사실상 하나/ 로스 맥도널드의 허세/ 도로시 세이어즈의 실패/ 내가 만일 서머싯 몸을 안다면/ 오스틴 프리먼이 이룬 것/ 서머싯 몸의 외로움/ 헤밍웨이를 옹호함/ 피츠제럴드의 매력/ 존 딕슨 카를 읽을 수 없는 이유
제3장 할리우드
할리우드를 경멸할 수 없는 이유/ 좋은 영화가 가능하려면/ 할리우드의 윤리관/ 험프리 보가트와 영화 〈빅 슬립〉/ 추리소설을 효과적으로 화면에 옮기는 요소/ 할리우드에 필요한 건 배짱뿐/ 와식 작가와 긴 의자/ 히치콕에게 하는 충고/ 할리우드에서 살아남는 방법/ 목을 내놓을 준비는 되어 있다
제4장 필립 말로
필립 말로의 양심/ 필립 말로의 정의/ 필립 말로의 인생/ 필립 말로의 성숙/ 필립 말로의 운명
제5장 일상
캘리포니아/ 편집자가 욕을 먹는 이유/ 나의 비서, 나의 고양이/ 내가 우리 고양이를 존경하는 이유/ 왜 표지에 작가 사진을 싣는 걸 그만두지 못할까/ 나란 사람은/ 나에게 텔레비전이란/ 어차피 죽어야 한다면/ 나의 주부 생활/ 취미는 코끼리 수집/ 잃어버린 아름다움/ 기나긴 이별/ 어쩔 수 없는 감상주의자/ 자살 시도 후에 쓴 편지/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결혼에 대한 몇 가지 충고/ 내 글쓰기 혹은 글 안 쓰기의 문제/ 문제는 단 하나, 외로움/ 여자를 사랑하는 법/ 다시, 사랑/ 나의 죽음에 대하여
카테고리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