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런것은 아니지만 나의 까다로운 파장과 딱 맞는 책을 만나면 그 때부터 현실과상상의 경계를 넘어 소설속에 소설 한 편이 더 존재하는 것 같은 모호함에 휩싸인다.대체적으로 그 작가의 책들이 비교적 나를 흡족하게 한 경우이긴 한데 작가들의 작품속에는그만의 색깔이 분명하여 지난 작품들과 닮아있는 경우도 많고 아주 드물게 전혀 새로운이야기로 내가 알던 작가가 맞나 하는 궁금증을 유발하기도 한다.이시대의 입담꾼이라는 별명을 지닌 작가답게 말하고자 하는 폼이 넓다보니 읽기전에마치 전혀 먹어보지 않은 새로운 음식을 앞에 놓은 것처럼 약간은 설레고 약간은 주눅이 든다.몇 편의 작품에서는 그가 지나왔을 시간과 공간속에 스며들었던 추억일 수도 있고기행일 수도 있던 얘기들이 있었고 희한하게 음식과 추억이 머무려진 이야기도 있었다. 단 한번의 연애 만 하는 사람이 있을까?없으리라는 단정은 할 수 없지만 꽤 진부한 사랑을 풀어 놓았으리라고 짐작한다.열마리의 용이 승천하다가 아홉 마리는 승천했고 한 마리는 남아 바다로 떨어졌다는 구룡소 가고향인 이새길 과 박민현 의 사랑 연대기라고 하면 맞을까.아니 책을 덮고 나서 굳이 조정한다면 소년의 해바라기 사랑쯤이 더 타당한 정의일 듯 싶다.일제가 물러간 후 호황이던 항구는 잠시 조용했지만 고래잡이로 다시 풍요함이 펼쳐진다.80년대 중반까지 계속되었던 고래잡이는 소년과 소녀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 고향에서는한창이었던 모양이다.인간에게도 페로몬이 있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논쟁과는 상관없이 민현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심장이 다르게 뛰는 것을 느끼는 예민한 후각을 지닌 새길에게 민현은 영원한 마돈나였다.자신이 가진 신비스런 이끌림의 능력을 이용하여 남자를 이용할 줄 아는 민현은 걸레 라는 오명에도불구하고 국립대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된다.평범한 새길은 그녀가 대학에서 만나자 라는 말 한마디에 죽을 둥 살 둥 그저 그런 대학에 입학하고군사독재의 소용돌이속에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가 전경으로 군에 입대한 새길에게 정권의하수인이라고 낙인찍은 민현은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한다.위장취업으로 노동운동을 하던 민현을 다시 우연히 만나게 된 새길은 취조중인 경찰에게 유린되기 전민현을 안게된다."어서 나를 가져. 저 사람들한테 내가 더 더러워지고 망가지기 전에."어쩌면 민현은 그녀를 따라다니던 수많은 더러운 소문처럼 걸레 가 아니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를 헤치지 않고 나를 독점하거나 내게서 뭘 빼앗아 가지 않으면서. 순수하게 나를 좋아한다는 느낌을준 유일한 사람 이었던 새길에게 몸을 연 그날이 그녀의 첫 경험이었다고 믿고 싶었다. 나나 였던 민현의 어머니는 힘든 파도를 가르는 새끼고래를 제몸에 얹어 세상에 끌어올리기 위해 바다로떠났는지도 모른다. 결국 민현은 요정의 마담이 되어 정계, 제계의 막강한 힘을 얻은 어미의 도움으로멋진 날개를 얻어 큰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넒고 넓은 바다에 고래 세 마리가 있었다. 도망치던 새끼가 힘들어 하면 어미가 지느러미에 새끼를 얹어업고 갔다. 아비는 심장에 작살이 박혀 주변을 피바다로 만들고 죽을 때까지 가족의 뒤를 지켰다.넓고 넓은 바다 한가운데서. -171p그래도 어쩌겠는가. 그게 에비, 에미의 운명인 것을.아버지의 술주정과 폭력으로 집을 나간 엄마를 증오하며 혼자 남겨졌던 민현은 에미와 자신을 사랑하던남자 새길에 의해 넓은 바다로 나가 큰 고래가 되었다.여전히 민현을 사랑하여 결혼을 하지 않은 새길은 철새처럼 찾아드는 민현을 위해 고향에 요새를 방불케하는 보금자리를 만들고 그녀와 사랑을 나눈다.어쩔수 없이 새길의 모습에서 작가를 본다. 뭐 작품속의 배경이 그의 고향은 아니지만 워낙 역마살이 든그가 맘속에 고향이야 한 둘 이겠는가. 신비한 끌림을 지닌 머리좋고 아름다운 여인 민현은 그의 첫사랑과닮았을 수도 있고 막연하게 꿈꾸어 온 여인일 수도 있겠지.정처없이 지나던 어느 바위산 속 동굴을 보면서 태양발전과 풍력발전을 끌어오고 샘솟는 맑은 물을 식수로하는 궁리도 하지 않았겠나.온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로 소외와 무지를 가뿐히 날리고 온전히 자연의 힘으로만 성장한풀들을 먹어보겠다는 도락가의 소망도 버무렸겠지.그래서 난 또 어쩔 수 없이 평생 꿈꿔왔던 사랑과 지극히 안전하면서도 안락한 공간속에 노년을 행복하게보내는 작가의 모습을 볼 수 밖에 없다. 글쎄 평생 결혼이란 족쇄를 차지 않고 사랑하는 여인과 평생 연애만했던 새길의 모습도 역시 작가의 소망이 아닐까. 어느 작가의 작품이든 자신이 녹아들지 않은 작품은 없으므로나의 이런 상상은 완전히 허구만은 아닐 것이다.그리고 완전한 사랑의 모습은 바로 이런 것이라는 것에 나도 단 한번의 연애 의 주인공이고 싶다.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 으로 불리는 성석제 작가가 장편소설로는 처음으로 쓴 연애소설. 2012년 여름에서 초겨울까지 전작 형태로 단숨에 씌어진 이 소설은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고래잡이의 딸에게 매혹 당한 어린 소년이 중년의 남성이 되기까지 사랑과 치유, 구원의 서사를 그린 작품이다.
성석제 작가는 특유의 유머와 통찰, 그리고 동세대의 경험담을 풍부하게 활용해 사랑과 구원이라는 인간 본연의 보편적 테마를 극사실화처럼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황홀하고 달콤하면서도 치명적인 연애의 미학이, 깊은 좌절감과 극한의 희열 사이를 오가며 반복되는 연애의 본질이 유쾌하고 유머러스하게,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릴 정도의 묵직한 감동으로 그려진다. 그와 동시에 지금 우리 사회의 주역인 베이비부머 세대의 주인공들이 시대와 일상의 폭력을 넘어 사랑을 찾고 구현하는 과정 역시 흥미진진하다.
동해안 어촌마을(구룡포)에서 태어난 남자(이세길)는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고래잡이의 딸(박민현)을 만나 그녀의 매력에 사로잡힌다. 그 시점부터 남자는 유년 시절,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 데모와 미팅으로 대변되는 대학 시절, 그리고 군대(전경) 시절을 거쳐 사회인으로까지 이어지는, 한 여자만을 향한 아름답고도 운명적인 연애를 펼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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