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책꽂이를 뒤적이다 발견한 우리의 죄는 야옹 이라는 시집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물건 또는 마음)이 시인의 눈을 통과하여 나오는 목소리 또는 말이 시집으로 발화한다. 길상호 시인의 해독되지 않는 낯선 말들이 모여 독특한 풍경을 만든다.가만히 조심스럽게 무엇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따라 나도 고개를 이리 돌렸다, 저리 돌렸다 해보지만,, 가만히 읊어봐도 소리내지 않고 눈으로 잡으려고 해도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공기처럼 모양이 없다. 무엇이 나를 이 시에 붙들어 매는가?-봄비에 젖은-약이다 어여 받아먹어라봄은한 방울씩눈물을 떠먹였지차갑기도 한 것이뜨겁기까지 해서동백꽃 입술은쉽게 부르텄지꽃이 흘린 한 모급덥석 입에 물고방울새도 삐 ! 르르르르르목젖만 굴려댔지틈새마다얼음이 풀린 담장처럼나는 기우뚱너에게기대고 싶어졌지시인의 말을 옮겨적고 나면 더 쉽게 알아지려나물어와 운문이 산문이고양이들을 데려와 함께 지내면서나는 야옹야옹,새로운 언어를 연습한다.말이 되지 않는 고양이어를 듣고서도눈치가 빠른 고양이들은나를 정확하게 이해해준다.얼토당토않은 말은 적당히 무시하면서 ···· 시가 되지 않는 문장들은교감으로 당신에게 가닿길 바란다.2016년 늦가을길상호그의고양이어가어느 모르는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는 때가 있겠지그렇겠지!!
문학동네시인선 그 여든일곱번째 시집으로 길상호 시인의 신작을 펴낸다. 우리의 죄는 야옹 은 지난 2010년 눈의 심장을 받았네 이후 6년을 꽉 채워 출간하는 그의 네번째 시집이기도 하다.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이후 길상호 시인은 침착하면서도 집요한 시선에 과묵하면서도 침예한 사유를 한데 발휘하면서 시단의 자기자리를 확실히 다져온 바 있다. 그의 이러한 내공이 정점으로 빛을 발하는 이번 시집은 총 3부로 나뉘어 넘침이나 모자람 없이, 단정히도 어떤 회색으로 담겨 있다. 이때의 회 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그러하듯, 지극히 찰나 적인 우리 삶의 순간마다 그의 눈동자가 깜빡거리고 있음을 잘 알겠어서이다.
그는 언제 눈을 떴다 언제 눈을 감는가. 그의 시는 지극히 조증인 적도 없고 지극히 울증도 없이 언제나 극적인 정도라 할 때, 그 지점 언저리에서 아슬아슬 흔들리는 나침반을 닮았다. 그래서 무섭다면 그래서 만만치가 않다면 조금 더 쉽게 이해가 되려나 하면서도 이번 시집의 표제이자 마지막에 실린 우리의 죄는 야옹 앞에서 그저 웃지요 하게 되는 건, 그는 지시하는 시인이 아니고 그는 직언하는 시인이 아니고 그는 그저 가리키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시인이 가리키는 그 지점에서, 돌고 돌아가는 세상사의 온갖 이야기들 그 비밀들 앞에서 그는 다 봤다 싶으면 아무런 말없이 확연히 돌아서서 가버리는 사람이다. 발소리도 고요하다. 그를 좇는 일이 시를 좇는 일의 다름아닌 건 바로 이런 그의 시적 태도에 적을 두어도 안심이 되는 까닭일 테다.
그는 다 먹은 걸 자랑하느라 흔들면 요란법석을 떠는, 수저가 든 빈 양은도시락통이 아니다. 물을 마실 때의 고양이다. 잠자리를 찾을 때의 고양이다. 군소리 하나 없이 정확하게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온몸을 가장 동그란 원이 될 수 있게 웅크린다. 길상호 시인의 강함은 바로 그 연함에 있다. 야옹. 번역할 수 없지만 번역할 필요없이 파동되는 고양이의 부름, 그 상징적인 언어의 힘, 이번 시집 속 길상호 시인의 시적 언어를 요약해 말해보자면 말이다.
시인의 말
제1부
썩은 책
연못의 독서
물티슈
빗방울 사진
고인돌
녹아버리는 그림
빗물 사발
무덤덤하게
침엽수림
물방울 거미
손 피리
얼음소녀
도마뱀
여진
데스밸리
식은 사과의 말
비는 허리가 아프다
오늘의 버스
날다
얼음이라는 과목
알약
의자만 남아서
보시
두 개의 무덤
콘도르
겨울, 거울
풀칠을 한 종이봉투처럼
제2부
물먹은 책
응시
봄비에 젖은
기타 고양이
암각화
유고 시집
번개가 울던 거울
고양이와 커피
혼자서 포장마차
그늘진 얼굴
나이테 원형극장
달리는 심야 수족관
달리는 심야 영화
유령 소리
겨울의 노래
퇴행성관절염
점. 점. 점. 씨앗
불어터진 새벽
얼음이 자란다
그물침대
그림자 사업
칠월 무지개
정전기가 있었다
눈사람 스텝
녹아도 좋은 날
저녁의 퇴고
겨울눈
제3부
말없는 책
거품벌레
도비왈라
무한 락스
아침에 버린 이름
손톱 속의 방
그늘에 묻다
잠잠
얼음과 놀다
마네킹 나나
아무것도 아닌 밤
아홉수의 생일 파티
눈치
파리 양식장
녹슨씨에게
가디마이
배꼽 욕조
풀밭의 주문
빨간 일요일
얼음 공화국
나뭇잎 행성
녹다 만 얼굴
타인의 방
우리의 죄는 야옹
해설|상처의 수사학
|김홍진(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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